공부 · 90일
해설과 함께 읽기
핵심 90장, 각 장마다 역사와 배경에 대한 짧은 해설.
- 1일째
태초에
창세기 1책 소개.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세상과 인류,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집안의 시작을 다룹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이 책을 썼습니다. 가장 이른 시대와 족장 시대(기원전 약 2100–1700년)를 메소보다미아, 가나안, 애굽을 무대로 다룹니다. 각 단락은 히브리어 머리말 toledoth, 곧 ‘이것은 …의 내력이다’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흔한 히브리어 낱말 elohim은 형태는 복수이지만 단수 동사와 함께 쓰이며, 구약에서 동사 bara(창조하다)의 주어는 언제나 하나님입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tohu와 bohu를 옮긴 말로, 대략 ‘거칠고 황량한’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은 물과 물 사이의 둥근 지붕처럼 그려집니다. 이스라엘의 이웃 민족들이 섬기던 해와 달은 이름조차 불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인의 하루는 해 질 때 시작되었습니다.
- 2일째
뱀과 동산
창세기 3뱀의 간교함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낱말 arum은 앞 장 끝에 나오는 arummim(‘벌거벗은’)과 소리가 비슷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어 연약했고, 뱀은 간교했습니다. 흔히 “날이 서늘할 때”로 옮기는 표현은 저녁 산들바람을 뜻할 가능성이 크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폭풍 소리로 읽습니다. 하와(khawah)라는 이름은 ‘생명을 주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와 소리가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지키는 날개 달린 수호자인 그룹들이 돌아갈 길을 막습니다. 창세기에서 동쪽으로 옮겨 가는 것은 흔히 하나님의 임재나 복에서 멀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 3일째
홍수
창세기 7이 기사는 홍수가 시작된 날을 둘째 달 17일로 정확히 밝혀, 기록 문서 같은 분위기를 줍니다. 물은 아래에서도 위에서도 솟아나, 창조 이야기에서 물이 나뉘고 뭍이 드러날 때 정해진 경계를 허뭅니다. 물이 불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 “많아져”는 창조 때 생물이 땅에 가득해지는 데 쓰인 동사와 같습니다. 여분의 ‘정결한’ 짐승은 먹을거리와 노아의 제사를 위한 것이었지만, 자세한 음식법은 나중에 시내 산에서 주어졌습니다. 성경에서 40은 시험과 자주 연결되는 숫자입니다.
- 4일째
바벨탑
창세기 11이 이야기의 무대는 메소보다미아 남부의 바벨론 지방입니다. 그곳에는 돌이 귀했기 때문에 건축자들은 구운 벽돌과 천연 아스팔트로 만든 역청을 썼습니다. 반면 가나안에는 돌이 풍부했습니다. 그 탑은 아마 지구라트, 곧 바벨론 사람들이 신들이 땅으로 내려오는 거룩한 산으로 여긴 계단식 신전 탑이었을 것입니다. 바벨이라는 이름은 ‘혼잡하게 하다’라는 히브리어 낱말과 소리가 비슷합니다. 이어서 이 장은 셈의 계보를 데라까지 따라갑니다. 데라의 가족은 페르시아 만 가까이에 있던 수메르의 주요 도시 우르를 떠나, 북서쪽으로 약 550마일 떨어진 무역 중심지이자 달 숭배로 알려진 하란으로 갔습니다.
- 5일째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떠나다
창세기 12아브람은 가나안에 이르렀지만 그곳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막을 옮겨 다녔습니다. 세겜의 모레 상수리나무는 아마 가나안 사람들의 성소였을 것입니다. 모레는 ‘선생’이라는 뜻이며, 가나안에서는 숲이 흔히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그곳과 벧엘 근처에 단을 쌓았습니다. 기근이 들자 그는 애굽으로 갔습니다. 나일 강이 적셔 주는 애굽은 흔히 가장 늦게 기근을 겪는 지역이었습니다. ‘바로’는 개인 이름이 아니라 칭호입니다. 사래를 누이라고 부른 것은 오라비가 누이의 혼인을 주선하던 관습을 반영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일화는 훗날 이스라엘이 애굽에 머문 일과 매우 닮았습니다.
- 6일째
아브람과 맺은 언약
창세기 15자식이 없던 아브람은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 흔히 그러했듯이 자기 청지기인 다메섹 엘리에셀이 재산을 물려받을까 두려워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다메섹’과 ‘상속자’라는 낱말의 소리로 말놀이를 합니다. 이 의식은 맹세를 확정하던 고대의 방식을 반영합니다. 짐승을 반으로 쪼개고, 약속하는 사람은 자기 말에 목숨을 걸었습니다(예레미야 34장 참조). 히브리어 관용구로는 언약을 문자 그대로 ‘자른다’고 말합니다. 400년이라는 괴로움의 기간은 어림수로 보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연대에 따르면 출애굽은 기원전 1446년경에 일어났지만, 많은 학자들은 기원전 1270년경으로 봅니다.
- 7일째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과 이삭
창세기 22역대기는 모리아 땅을 훗날 예루살렘 성전이 선 산과 같은 곳으로 봅니다. 후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곳에서 드린 예배에 비추어 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에 붙인 이름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라는 뜻입니다. 족장 이야기는 흔히 핵심을 이름에 담아 둡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훗날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일을 단호히 정죄했습니다. 이 장은 동쪽에 사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소식으로 끝납니다. 그의 집안에는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와, 어쩌면 욥의 조상일지도 모르는 우스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 8일째
벧엘에서 꾼 야곱의 꿈
창세기 28야곱은 아브라함 집안이 전에 그랬던 것처럼 친족 가운데서 아내를 얻으려고 북쪽에 있는 어머니의 집안으로 갑니다. 이삭은 엘 샤다이, 전통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옮기는 이름으로 그를 축복합니다. ‘계단’(전통적으로 “사닥다리”)으로 옮기는 히브리어 낱말은 성경의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낱말은 아마 하늘과 땅을 잇는 것으로 여겨진 신전 탑, 곧 지구라트의 경사로나 계단을 떠올리게 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머리맡에 둔 돌은 베개라기보다 바람막이로 쓴 큰 돌이었을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기름을 붓는 것은 그것을 거룩한 용도로 구별하는 일이었고, 벧엘(‘하나님의 집’)은 훗날 이스라엘의 주요 성소가 되었습니다.
- 9일째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
창세기 37이 장은 요셉 이야기를 엽니다. 요셉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진 이야기로, 창세기 앞부분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로,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의 맏아들입니다. 화려한 옷은 아버지가 그에게 유산의 가장 큰 몫을 주려 한다는 표시였습니다. 이야기 전체에서 옷이 바뀌는 것은 신분이 바뀌는 것을 나타냅니다. 꿈은 신이 보내는 메시지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으며, 되풀이될 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형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양 떼를 쳤습니다. 세겜은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약 50마일, 도단은 거기서 약 15마일 더 가야 했습니다. 상인들은 이스마엘 족속으로도, 미디안 사람으로도 불립니다. ‘이스마엘 족속’은 사막 부족들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10일째
야곱과 요셉의 장례
창세기 50야곱의 시신은 애굽 방식으로 향 처리되었고, 애굽은 그를 위해 70일 동안 애곡했습니다. 바로를 위한 애곡보다 겨우 이틀 짧은 기간입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가나안에 장사하려면 자기 직무를 떠나도록 바로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39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문자적으로 ‘요셉의 무릎에서 태어났다’)라는 표현은 상징적인 행위를 묘사합니다. 갓난아기를 무릎에 올려놓는 것은 그 아이가 집안의 계보에 속한다고 선언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언젠가 자기 뼈를 애굽에서 메고 나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호수아서에 따르면 그 뼈는 훗날 세겜에 묻혔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족장 시대가 끝납니다.
- 11일째
애굽의 종살이
출애굽기 1책 소개.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풀려나 시내 산에서 언약을 받고 성막을 지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썼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 사건들의 연대는 보통 기원전 1446년경이나 1270년경으로 봅니다. 이 책의 헬라어 이름은 exodos, 곧 ‘나가는 길’에서 왔습니다.
기원전 약 1650년부터 1550년까지 북부 애굽은 힉소스라 불린 셈족 침입자들이 다스렸습니다. 그들이 쫓겨난 뒤 새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포함한 모든 셈족을 불신했는지도 모릅니다. 비돔과 라암셋은 후기 청동기 시대에 세워진 유적과 동일시됩니다. 북부에는 돌이 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은 짚을 섞어 햇볕에 말린 벽돌로 지었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 12일째
불붙은 떨기나무
출애굽기 3모세는 여기서 호렙이라 불리는 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다른 곳에서는 대개 시내 산이라 불리며, 두 이름은 아마 같은 산을 가리킬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축을 먹일 목초지와 벌을 위한 꽃이 있는 기름진 땅을 묘사합니다.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의 좁은 땅인 가나안은 애굽과 나머지 근동 지역을 잇는 무역의 교차로였기에 치열한 쟁탈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야훼(Yahweh)는 아마 ‘있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한 형태일 것입니다. 후대 유대인들은 이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대신 adonay(‘주’)라고 읽었습니다. 정확한 발음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여호와’(Jehovah)는 두 낱말을 인위적으로 섞은 형태입니다.
- 13일째
첫 유월절
출애굽기 12유월절이 있는 달 아빕월은 훗날 바벨론식 이름으로 니산월이라 불렸으며, 많은 고대 민족이 봄 축제를 열던 3월과 4월에 해당합니다. 뻣뻣하고 촘촘한 가지를 가진 작은 덤불인 우슬초는 붓으로 쓰였습니다. 무교병은 급히 떠나는 백성을 떠올리게 했고, 식사는 길 떠날 차림으로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유월절을 지킵니다. 장정 600,000명이라는 숫자는 논란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일 수도, 상징적일 수도 있고, 히브리어 elep(‘천’)이 군대 단위를 뜻했을 수도 있습니다. 헬라어 본문과 사마리아 본문은 430년을 아브라함 때부터 계산합니다.
- 14일째
바다를 건너다
출애굽기 14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진을 친 비하히롯, 믹돌, 바알스본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애굽은 당시 가장 강한 군사 강국이었고, 가벼운 병거는 가장 앞선 무기였습니다. 빠르고 다루기 쉬운 병거에는 흔히 모는 사람과 싸우는 사람이 함께 탔는데, 본문이 지휘관들을 언급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낱말 kabod에는 무게와 중요성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의 병거 바퀴에 관한 구절은 고대 역본마다 다르게 이해됩니다. 어쩌면 물이 있던 깊은 모래에서 가벼운 바퀴가 부서졌을 것입니다.
- 15일째
십계명
출애굽기 20시내 산 언약은 대왕이 속국 백성에게 조건을 정해 주던 고대 근동 조약의 형식을 따릅니다. 왕의 이름, 지난 일의 회고, 조건, 기록된 사본, 증인, 그리고 복과 저주가 들어갑니다. 여기서는 서두가 왕의 이름을 밝히고 애굽에서 건져 낸 일을 상기시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다른 곳에서 이 계명들을 ‘열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살인하지 말지니라”라는 계명의 동사는 모든 종류의 죽임이 아니라 불법적인 살인을 뜻합니다. 제단은 흙이나 다듬지 않은 돌로, 계단 없이 쌓아야 했습니다. 아마 이스라엘의 예배를 가나안의 의식과 구별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 16일째
금송아지
출애굽기 32그 우상은 어린 수소였을지도 모릅니다. 수소는 힘과 다산의 흔한 상징으로, 백성이 애굽에서 보았던 형상들과 비슷했습니다. 그것을 “송아지”라고 부른 것은 조롱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아론은 여호와의 절일을 선포하여 우상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뒤섞었습니다. 백성이 “뛰놀더라”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에는 성적인 뜻이 담길 수 있으며, 다산 숭배에는 흔히 그런 의식이 따랐습니다. 금을 가루로 빻아 백성에게 마시게 한 것은 우상을 부정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돌판을 깨뜨린 것은 언약이 깨졌음을 알리는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레위 자손은 모세 편에 섰습니다.
- 17일째
속죄일
레위기 16책 소개. 레위기는 이스라엘의 예배에 관한 지침서입니다. 제사,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 거룩한 날들, 의식적 정결을 다룹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에게서 나왔습니다. 성막이 세워진 뒤, 광야 여정이 시작되기 전 시내 산 기슭을 배경으로 하며, 시기는 기원전 1446년경이나 1270년경입니다.
일곱째 달 10일인 속죄일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엄숙한 날이자 유일하게 의무로 정해진 금식일이었으며, 오늘날 욤 키푸르로 지켜집니다. 소박한 세마포 옷을 입은 대제사장만이 성소의 가장 안쪽 방에 들어갔는데, 그 방은 왕의 알현실처럼 그려졌습니다. 아사셀의 뜻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떠나가는 염소’, 광야의 악령, ‘완전한 제거’, 또는 낭떠러지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 18일째
가나안에 간 열두 정탐꾼
민수기 13책 소개.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시내 산을 떠나 광야를 지나, 가나안 맞은편 요단 동쪽의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들려줍니다. 그동안 한 세대가 죽고 다음 세대가 자랍니다. 책 이름은 두 번의 인구 조사 명단에서 왔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에게서 나왔고, 후대의 서기관과 편집자들의 손을 거쳤습니다. 사건들의 연대는 기원전 약 1445–1406년이나 1269–1230년으로 봅니다.
정탐꾼들은 남쪽 신 광야에서 수리아의 하맛 어귀까지 약 275마일을 다녔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집안이 살았던 헤브론을 지났습니다. 훗날 타니스라 불린 소안은 애굽 삼각주의 이름난 도시였습니다. 첫 포도는 7월 말이나 8월에 익습니다. 가데스는 흔히 아인 엘쿠데이라트 샘과 동일시되지만, 어떤 학자들은 다른 곳으로 봅니다.
- 19일째
쉐마
신명기 6책 소개. 신명기는 출애굽 후 40년,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한 고별 연설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하려는 백성을 위해 시내 산 언약을 다시 말하고 넓히며, 고대 근동 조약, 특히 헷 족속(히타이트)의 조약과 비슷한 형식을 띱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저자이며, 배경은 기원전 약 1406년이나 1230년입니다.
이 장에는 첫 히브리어 낱말 shema(‘들으라’)에서 이름을 딴 쉐마가 들어 있습니다. 쉐마는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 고백으로, 유대교에서 지금도 암송됩니다. 후대 유대교 관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손과 이마에 매라는 명령을 테필린(경문), 곧 토라 구절을 담은 작은 상자로 문자 그대로 지켰고, 문설주에 관한 명령은 문틀에 붙이는 작은 함인 메주자로 지켰습니다.
- 20일째
여리고의 함락
여호수아 6책 소개.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산지를 차지하고 그 땅을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 준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건들의 연대는 기원전 약 1406–1376년이나 약 1230–1200년으로 보며, 당시 가나안은 저마다 왕이 있는 작은 도시 국가들이 조각보처럼 모여 있었습니다.
요단 강 가까이에 있던 여리고는 중앙 산지로 들어가는 두 주요 길을 지키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점령해야 했습니다. 양각 나팔(히브리어 shofar)은 여러 음을 내어 전투나 예배를 알릴 수 있었고, 용사들은 사기를 높이고 적을 두렵게 하려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 성은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졌으므로, 그곳의 금속은 성소의 곳간으로 들어갔습니다.
- 21일째
기드온을 부르심
사사기 6책 소개. 사사기는 여호수아와 첫 왕들 사이의 시대를 다룹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에게는 중앙 정부가 없었고, 이웃 민족들에게 거듭 억압을 당했습니다. 사사라 불린 지역의 영웅들이 위기 때마다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연대는 기원전 약 1376–1050년이나 약 1200–1050년으로 봅니다.
한때 순수한 유목민으로 여겨진 미디안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아라비아 일부와 요단 동편 남부를 지배했다는 사실이 이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계절적 약탈은 대규모 군대에 낙타를 쓴 가장 이른 기록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폭풍과 다산의 신이었고, 아세라는 흔히 거룩한 나무나 목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는 그 지역의 바알 제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 22일째
나오미 곁에 남은 룻
룻기 1책 소개. 룻기는 기원전 1100년경 사사 시대의 짧은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인 시어머니에게 끝까지 신의를 지킨 모압 과부가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됩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사기의 폭력적인 사건들과 달리, 베들레헴의 평범한 가정생활과 농사짓는 삶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산지의 기근은 대개 가뭄 때문이었고, 유다 동남쪽의 모압에는 유다에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비가 내리곤 했습니다. 민족마다 자기 땅을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여겨졌으므로, 모압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신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뜻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shadday(“전능자”)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힘과 공급을 떠올리게 합니다. 보리 추수는 3월 말에서 4월 중순 사이에 시작되었습니다.
- 23일째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다
사무엘상 3책 소개. 사무엘상은 사무엘, 사울, 젊은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이 사사들이 이끄는 느슨한 지파 연합에서 왕국으로 바뀌어 간 과정을 들려줍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약 1050–1011년의 사건들을 다룹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원래 한 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 언약궤가 있던 실로의 성소에서 섬겼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의 등불이 밤새 꺼지지 않게 해야 했습니다.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것은 아브라함과 모세의 경우처럼 엄숙한 순간을 나타냅니다. 이 장 끝에서 사무엘은 북쪽에서 남쪽까지 온 땅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표현대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선지자로 알려집니다.
- 24일째
다윗과 골리앗
사무엘상 17두 군대는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습니다. 엘라 골짜기는 베들레헴에서 남서쪽으로 약 15마일, 블레셋 땅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기름진 골짜기입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손실을 줄이려고 양쪽이 뽑힌 대표 용사들에게 승패를 맡기기도 했습니다. 골리앗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 가운데 하나인 가드 출신이었습니다. 물매는 두 끈에 달린 가죽 주머니로, 빙빙 돌리다 놓으면 치명적인 힘으로 돌을 날렸으며 군인들도 이것을 썼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블레셋의 주신은 다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아직 이스라엘의 성읍이 아니었습니다.
- 25일째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다
사무엘하 5책 소개. 사무엘하는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의 통치를 들려줍니다. 내전, 지파들의 통일, 이웃 나라들과의 전쟁, 그리고 그의 집안에서 일어난 분란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약 1011–971년을 다룹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사무엘상과 한 권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은 넓이가 9–12에이커쯤 되는 작은 요새 성읍이었습니다. 유다와 북쪽 지파들 사이 경계에 있었기에, 천연 방어 시설과 물 공급을 갖춘 중립적이고 중앙에 있는 수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 성을 어떻게 점령했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흔히 “수구”로 옮기는 드문 낱말은 수직 갱도를 뜻할 수도 있고, 비유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르바임 골짜기는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사이에 있습니다.
- 26일째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사무엘하 7이제 백향목으로 꾸민 돌 궁전에 살게 된 다윗은 아직 장막 안에 있던 언약궤를 위해 영구한 성전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까지 예배 장소는 옮길 수 있는 장막 성소인 성막이었습니다. 이 장은 ‘집’이라는 낱말로 말놀이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집(성전)을 지어 드리려 했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집(왕조)을 약속하십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흔히 목자라 불렸는데, 목동 출신인 다윗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 이야기에 세 번 나오는데, 여기가 그 첫 번째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훗날 성전을 지었습니다.
- 27일째
솔로몬의 성전 봉헌
열왕기상 8책 소개. 열왕기상은 솔로몬의 통치와, 기원전 931년 그가 죽은 뒤 왕국이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라진 일, 그리고 아합에 이르기까지의 후대 왕들을 따라갑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애굽, 앗수르, 헷 족속(히타이트) 같은 옛 강대국들이 약해져 있던 기원전 약 973–853년을 다룹니다.
솔로몬은 성전이 완공된 뒤 거의 1년을 기다린 것으로 보입니다. 봉헌식을 가을 추수 절기인 초막절에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율법이 정한 대로, 그때까지 장막 안에 있던 언약궤를 채와 함께 메고 들어왔습니다. 솔로몬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무리는 북쪽 하맛 어귀에서 남쪽 애굽 하수(와디 엘아리시)까지 온 땅에서 모였습니다.
- 28일째
왕국이 갈라지다
열왕기상 12솔로몬이 죽은 뒤, 기원전 931–913년에 다스린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으로 인정받으려고 북쪽 지파들의 오랜 정치·종교 중심지인 세겜으로 갔습니다. 북쪽 사람들은 솔로몬 시대의 강제 노역과 무거운 세금을 덜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전갈”은 아마 가시나 못이 박힌 채찍을 뜻할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강제 노역 감독 아도니람을 보내자, 그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북쪽의 새 왕 여로보암은 자기 왕국 남쪽의 벧엘과 북쪽 끝의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습니다. 두 곳 모두 오랜 종교 전통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단에서는 발굴로 성소의 기단, 곧 ‘산당’이 발견되었습니다.
- 29일째
갈멜 산의 엘리야
열왕기상 18가뭄 동안 아합은 말들을 살리려고 풀을 찾아다녔습니다. 말은 중요했습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의 비문은 아합이 기원전 853년 카르카르 전투에 병거 약 2,000대를 이끌고 왔다고 말합니다. 지중해 해안까지 뻗은 산등성이인 갈멜 산은 가나안 예배로 알려진 곳이었고, 바알은 비를 내린다고 여겨진 가나안의 폭풍 신이었습니다. 백성이 “머뭇머뭇”한다는 히브리어 낱말은 절뚝거린다는 뜻으로, 바알 선지자들의 춤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의 조롱은 사람처럼 필요를 지닌 것으로 그려진 신들을 비웃습니다. 이스르엘은 갈멜에서 약 17마일 떨어져 있었습니다.
- 30일째
나아만이 낫다
열왕기하 5책 소개. 열왕기하는 기원전 약 853년부터 722년 사마리아 함락과 586년 예루살렘 함락까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두 왕국의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앞부분은 선지자 엘리사를 중심으로 합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이웃이자 자주 적이 되었던 아람의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문둥병”은 아마 오늘날의 한센병이 아니라 다른 심한 피부병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신을 그 땅의 흙과 연결해 생각했으므로,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흙을 청합니다. 림몬은 아람의 폭풍 신 람만(‘우레를 치는 자’)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철자는 ‘석류’라는 뜻이어서, 조롱하는 말장난일 수도 있습니다.
- 31일째
사마리아의 함락
열왕기하 17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기원전 732년경 앗수르의 봉신으로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726년 살만에셀 5세가 앗수르 왕위에 오르자, 호세아는 조공을 끊고 애굽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소라 불린 애굽 왕은 누구인지 밝히기 어렵습니다. 학자들은 오소르콘 4세나 피안키, 또는 사이스라는 도시를 제안합니다. 사마리아는 기원전 722년에 함락되었지만, 다음 왕 사르곤 2세도 자기가 정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할라와 고산과 하볼 강가로 끌어갔는데, 앗수르 기록에는 그곳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들을 새로 만든 사마리아 속주에 정착시켰습니다. 이 새 이주민들은 네르갈 같은 자기 신들에 더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 32일째
바벨론에 함락된 예루살렘
열왕기하 25바벨론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토성을 쌓고 성벽을 뚫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밤에 요단 골짜기 쪽으로 도망쳤지만 붙잡혀 느부갓네살의 야전 본부가 있던 립나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반역한 통치자에게 흔히 내리던 형벌대로 눈이 뽑혔습니다. 바벨론 비문에도 이름이 나오는 관리 느부사라단은 주요 건물들을 불사르고 성벽을 헐고 성전의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 남아 농사를 지었습니다. 왕실 관리 집안 출신인 그다랴가 미스바에서 총독이 되었습니다. 라기스에서 나온 인장 자국이 그의 높은 직위를 확인해 줍니다. 그가 살해된 뒤 많은 사람이 애굽으로 도망쳤습니다. 바벨론 기록에는 포로로 잡혀 온 여호야긴 왕에게 준 식량 배급이 적혀 있습니다.
- 33일째
고레스의 조서
에스라 1책 소개. 에스라서는 바사의 통치 아래 유대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짓고, 종교가 뒤섞인 이웃들 가운데서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쓴 이야기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학사 에스라가 썼습니다. 첫 귀환부터 에스라 자신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 기원전 약 538년에서 457년까지를 다룹니다.
바사의 고레스 2세는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을 점령했습니다. 정복한 민족들을 흩어 놓았던 앗수르와 바벨론과 달리, 바사는 그 대가로 충성과 세금을 기대하며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신 마르둑에 관해 비슷한 선언을 했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바벨론에 남아 떠나는 이들을 도왔습니다. 바사가 임명한 총독 세스바살은 느부갓네살이 가져갔던 성전 그릇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 34일째
느헤미야의 밤 순찰
느헤미야 2책 소개. 느헤미야서는 바사 왕의 술 맡은 관원이 지역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으러 와서, 경제와 종교 문제도 처리한 이야기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책은 에스라가 썼습니다. 아닥사스다 1세 20년부터 32년까지, 기원전 약 445년부터 432년 이후까지를 다룹니다.
왕의 신하는 왕 앞에서 결코 슬픈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었고, 아닥사스다는 전에 예루살렘 재건을 중단시킨 적이 있었기에 느헤미야는 두려워했습니다. 왕은 이 계획을 불안한 속주를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주요 반대자 산발랏은 아마 예루살렘 북서쪽 벧호론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발견된 문서는 그가 훗날 사마리아를 다스렸음을 보여 줍니다. 느헤미야는 밤에 몰래 남쪽 성벽을 살폈습니다.
- 35일째
에스더의 위험한 선택
에스더 4책 소개. 에스더서는 다른 이들이 유대로 돌아간 뒤에도 동방에 남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기원전 486–465년) 때 바사의 수도 수산을 무대로 합니다. 한 유대 여인이 왕비가 되어 자기 백성을 멸망에서 구하는 데 힘을 보태며, 이 책은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모르드개의 공개적인 애통은 극심한 슬픔을 나타냈고, 굵은 베옷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대궐 문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궁중 규칙에 따르면 부름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든 죽임을 당할 수 있었고, 에스더는 30일 동안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에스더는 유대인들에게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금식하라고 부탁했는데, 보통의 하루 금식보다 긴 것이었습니다. 이 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 36일째
욥과 그가 잃은 것들
욥기 1책 소개. 욥기는 고난에 관한 시적 성찰로, 선하게 살면 언제나 형통한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집니다. 저자와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이른 시대, 곧 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어쩌면 에돔이 무대일 수 있습니다. 욥의 재산은 가축과 종들이고, 그는 자기 가족을 위해 직접 제사를 드리며, 매우 오래 삽니다.
이야기의 첫 마디는 비유의 시작일 수도, 역사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우스 땅은 요단 동쪽, 남쪽의 에돔이나 북쪽의 아람에 있었으므로 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7과 3 같은 어림수는 완전한 복을 암시합니다. 스바 사람들은 당시 사막의 약탈자였습니다. 겉옷을 찢고 머리를 미는 것은 흔한 슬픔의 표시였습니다.
- 37일째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대답하시다
욥기 38친구들과의 긴 논쟁 끝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대답하십니다. 구약에서는 폭풍이 흔히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자연에 관해 긴 질문을 잇달아 던지십니다. 새벽 별들은 하늘의 존재들 곁에서 사람처럼 노래합니다. 바다는 문 뒤에 갇힌 위험한 짐승으로 그려집니다. 눈과 우박은 하늘 창고에서 때를 기다리고, 동풍은 사막에서 뜨겁게 불어옵니다. 흔히 “가슴”과 “마음”으로 옮기는 두 낱말은 ‘따오기’와 ‘수탉’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따오기가 나일 강이 언제 범람할지 안다고 생각했고, 후대 랍비들은 수탉이 비를 예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38일째
두 가지 삶의 길
시편 1책 소개. 시편은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쓰인 노래와 기도의 모음입니다. 찬양, 탄식, 감사, 지혜의 노래가 들어 있습니다. 거의 절반이 다윗과 연결되고, 나머지는 여러 저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시인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지었고, 편집자들이 작은 모음집들을 점차 다섯 권으로 엮었는데, 이 과정은 아마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마무리되었을 것입니다.
시편 1편과 2편은 책 전체를 여는 서론으로 맨 앞에 놓였습니다. 시편 1편은 두 가지 삶의 길을 대조하는 지혜시입니다. 첫 낱말인 히브리어 ashrey(얼마나 행복한가)는 시편에 스물여섯 번 나오며, 복을 가리키는 흔한 낱말 barak와는 다릅니다. torah라는 낱말은 율법만이 아니라 가르침이나 교훈을 뜻합니다. 물을 넉넉히 받아 열매 맺는 나무가 바람에 날리는 겨와 대조됩니다.
- 39일째
목자이신 여호와
시편 23고대 근동에서는 왕과 통치자를 흔히 백성의 목자라고 불렀으므로, 이 시편은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목자는 양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눕게 했고, 양은 잔잔한 물만 마시기 때문에 고요한 시냇물을 찾았습니다. 그의 막대기와 지팡이는 들짐승과 다른 위험을 쫓아내는 도구였습니다. 그다음 장면은 잔치로 바뀝니다. 주인은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를 높이고 새 힘을 주었으며, 여기서 원수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23편부터 28편까지는 인도하심,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집에 사는 일이라는 주제를 함께 나눕니다.
- 40일째
정한 마음을 구하는 기도
시편 51이 탄식시는 잘못을 고백하고 자비를 구합니다. 표제는 이 시를 사무엘하 11장에 기록된 사건 뒤의 다윗과 연결합니다. 시인이 하나님께만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것은 강한 수사적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슬초는 첫 유월절 때처럼 정결 의식에서 뿌리는 데 쓰인 작은 식물이었습니다. 피 흘린 죄에 관한 구절은 살인만이 아니라 모든 중대한 불의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는 일에 관한 끝부분은 아마 포로기 이후, 온 공동체가 이 시편을 자기 기도로 드리던 때에 덧붙여졌을 것입니다.
- 41일째
바벨론의 강변에서
시편 137이 시편은 예루살렘이 무너진 뒤의 바벨론 포로기에서 나왔습니다. 예루살렘의 노래는 그 땅에서 누리던 삶의 기쁨과 이어져 있었기에, 사로잡은 자들이 포로들에게 그 노래를 부르라고 했을 때 슬픔 때문에 부를 수 없었고, 그들은 수금을 나무에 걸어 두었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쓰라린 마지막 구절들은 유다의 이웃이자 오랜 경쟁자인 에돔을 향합니다. 유다의 마지막 때에 에돔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을 바벨론에 넘겨주고 예루살렘의 함락을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복수를 구하는 기도를 저주시라고 부르는데, 고대 독자들조차 이를 충격적으로 여겼습니다.
- 42일째
아버지의 첫 가르침
잠언 1책 소개. 잠언은 일상생활을 위한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로운 말, 조언, 경고를 모은 책입니다. 많은 잠언이 솔로몬의 것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저자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이 책은 솔로몬의 통치(기원전 971–931년)부터 적어도 히스기야의 통치(기원전 728–686년)까지 여러 세기에 걸쳐 쓰이고 모였습니다. 많은 부분이 인생을 막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말합니다.
다른 고대 근동 지혜 문헌처럼, 첫 몇 장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히브리어 khidoth는 풀이가 필요한 수수께끼를 뜻합니다. 지혜는 거리에서 외치는 여인으로 그려집니다. 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낱말 khokmah는 여성형입니다. 세 부류의 사람이 지혜를 거스릅니다. 어리석은 자(pethim), 미련한 자(kesilim), 거만한 자(latsonim)입니다. 스올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이름입니다.
- 43일째
모든 일에 때가 있다
전도서 3책 소개. 전도서는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성찰합니다. 말하는 이는 ‘전도자’(히브리어 Qoheleth, 회중을 모으는 사람)로, 왕이자 다윗의 아들로 묘사되어 솔로몬을 가리키며, 한 편집자가 그의 말을 틀 안에 담습니다. 이 책은 전통적으로 솔로몬의 통치기(기원전 971–931년)로 연대를 잡습니다. 핵심 낱말 hebel은 김이나 입김을 뜻합니다.
유명한 시 한 편이 서로 반대되는 활동들을 짝지어 늘어놓으며, 저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심는 일과 거두는 일은 자연의 계절을 따랐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죽일 때란 전쟁과 사형을 뜻했고, 옷을 찢는 것은 흔한 애도의 표시였습니다. 뒤에 나오는 “재판하는 곳”은 문자적으로 ‘정의의 곳’입니다. 지방의 소송은 성문에서 장로들이 다루었습니다.
- 44일째
성전에서 본 이사야의 환상
이사야 6책 소개. 이사야서는 전통적으로 저자로 여겨지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모은 책입니다. 그는 기원전 약 740년부터 685년까지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책은 유다에게 다가오는 심판을 경고하고 살아남을 남은 자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배경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하고 유다를 위협한 앗수르의 발흥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은 기원전 740년경, 앗수르는 다시 세력을 넓혀 가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환상이 문학적 이유로 여기 놓인 이사야의 첫 부르심인지, 아니면 나중에 받은 사명인지 논의합니다. 스랍들은 여기에만 나오는 하늘의 존재들이며, 그 이름은 불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랍들의 외침에는 히브리어로 동사가 없어서,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지금 가득하다는 뜻일 수도, 앞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 45일째
포로들을 위한 위로
이사야 40이 장은 이사야서의 마지막 큰 단락인 40–66장을 여는데, 그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대로의 이미지는 사람들이 시온을 향해 나아가는 35장을 뒤집습니다.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오십니다. 레바논은 숲과 들짐승으로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어떤 번역에서 ‘온 땅’으로 옮기는 낱말은 문자적으로 해안 지방이나 섬들을 뜻합니다. 이 시는 넘어지지 않도록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우상들을 조롱합니다. 바벨론 사람과 애굽 사람은 해와 달과 별을 신으로 널리 믿었지만, 이 장은 그것들을 지음받은 것으로 소개합니다.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는 이미지는 출애굽을 떠올리게 합니다.
- 46일째
고난받는 종
이사야 53여호와의 종에 관한 이 시는 52장 끝 무렵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해석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일 수도, 자기 백성과 함께한 선지자일 수도 있습니다. 종은 마른 땅에서 나온 연약한 싹으로, 왕다운 위엄 없이 그려집니다. 짓밟히고 맞고 채찍질당하는 것은 범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흔히 “평화”로 옮기는 히브리어 shalom은 몸과 마음과 관계의 온전함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에서 한창때에 죽는 것은 심판의 표로 여겨졌고, 많은 자손과 장수는 지혜로운 삶의 보상이었습니다. 매장에 관한 구절(“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은 문자적으로 ‘그가 죽을 때에 부자와 함께’라고 말합니다.
- 47일째
예레미야를 부르심
예레미야 1책 소개. 예레미야서는 유다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다가올 멸망을 경고한 선지자의 말씀을 모은 책입니다. 내용은 예레미야 자신에게서 나왔고, 아마 그의 서기관 바룩이 기록했을 것입니다. 기원전 약 627년부터 580년까지, 곧 왕국의 마지막 시기, 바벨론의 예루살렘 파괴, 포로 생활 초기를 다룹니다.
예레미야는 부르심을 받을 때 아마 십 대였을 것입니다. 첫머리의 왕 목록에는 각각 석 달이 못 되게 다스린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이 빠져 있습니다. “살구나무 가지”는 히브리어 말놀이입니다. 가장 먼저 꽃이 피는 이 나무(shaqed, 아몬드나무)의 이름은 ‘지켜보다’(shoqed)와 소리가 비슷합니다. 바벨론은 유다의 정동쪽에 있었지만, 그 사이에 사막이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 군대는 북쪽에서 왔습니다.
- 48일째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
예레미야 29이 편지는 기원전 597년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사람들에게 보내졌습니다. 포로들은 여러 정착지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편지는 아마 이곳저곳에서 소리 내어 읽혔을 것입니다. 곧 돌아가게 된다고 약속하는 선지자들에 맞서, 예레미야는 포로들에게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고 가정을 이루며 자기들이 사는 바벨론 성읍들이 평안하기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전에 말한 대로 포로 생활이 70년 동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로들 가운데 있는 두 선지자가 거짓말쟁이로 지목됩니다. 그러자 바벨론에 있던 스마야라는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내 예레미야를 처벌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스바냐가 그 편지를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자 예레미야는 편지로 답했고, 이렇게 소식이 양방향으로 오갔습니다.
- 49일째
외로운 성 예루살렘
예레미야애가 1책 소개. 예레미야애가는 기원전 586년경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을 애도하는 다섯 편의 시 모음입니다. 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예레미야일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 네 편은 이합체 시입니다. 각 연이 스물두 글자로 된 히브리어 알파벳의 다음 글자로 시작하는데, 이 특징은 번역하면 사라집니다.
예루살렘은 종이 되어 버린 공주로 그려집니다. 그녀의 “사랑하던 자”는 아마 다산의 신 바알과 아세라였을 것이고, “친구”는 도와주지 못한 애굽 같은 동맹국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원전 605년, 597년, 586년, 581년의 여러 차례에 걸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시적 이름입니다. 포위는 기원전 588년 1월부터 586년 7월까지 이어졌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
- 50일째
마른 뼈의 골짜기
에스겔 37책 소개. 에스겔은 기원전 597년 유다의 다른 지도층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기원전 593년 서른 살에 그곳에서 환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약 593년부터 571년까지로 연대가 매겨지는 그의 책은,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는 심판을 경고하고 그 뒤에는 회복의 소망을 줍니다.
흩어져 바싹 마른 뼈들은 소망이 끊어졌다고 느낀 포로들을 그립니다. 히브리어 낱말 ruach는 숨, 바람, 영을 뜻할 수 있으며, 이 장은 그 세 가지 뜻을 모두 살려 말놀이를 합니다. 후반부는 상징 행위입니다. 선지자는 막대기 두 개를 하나로 합쳐, 솔로몬이 죽은 뒤 갈라졌던 북왕국과 남왕국이 다시 하나 됨을 보여 줍니다.
- 51일째
바벨론 궁정의 다니엘
다니엘 1책 소개. 다니엘서는 바벨론 왕궁에서 섬긴 유대 포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래에 관한 환상들을 기록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다니엘 자신이 썼으며, 이 책이 언제 최종 형태를 갖추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다릅니다. 이야기들은 첫 포로들부터 유대인의 귀환을 허락한 고레스의 조서 때까지, 기원전 약 605년에서 535년에 걸쳐 있습니다.
기원전 605년 느부갓네살은 유다 왕족의 젊은이들을 바벨론으로 데려갔습니다. 흔히 ‘환관’으로 옮기는 히브리어 saris는 여기서 아마 고위 관리를 뜻할 것입니다. 그들의 교육은 외국어로 된 바벨론의 방대한 문헌을 다루었습니다. 새 이름은 바벨론 신들을 기렸습니다.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은 벨드사살(벨이 그의 생명을 지킨다)이 되었습니다. 왕의 음식에는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거나 우상에게 바쳐졌을 수 있습니다.
- 52일째
사자 굴 속의 다니엘
다니엘 6지방 관리들은 세 명의 총리에게 보고했고, 총리들은 반역으로부터 왕을 지켜야 했습니다. 당시 여든 살쯤이던 다니엘은 온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오를 참이었습니다. 바사 왕의 조서는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에스더서도 이를 보여 줍니다. 다니엘은 성전이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도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굴을 왕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한 것은 아무도 몰래 열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지막 구절은 ‘다리오, 곧 바사 사람 고레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이 부분에 쓰인 언어인 아람어에서 ‘와’가 흔히 이런 뜻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두 이름이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 53일째
사랑하는 부모이신 하나님
호세아 11책 소개. 호세아는 기원전 약 760년부터 722년 앗수르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기 조금 전까지 그곳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 2세의 번영하던 통치 말기에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뒤 30년 동안 여섯 왕이 다스렸고 그 가운데 넷이 암살되었습니다. 신실하지 못한 아내 고멜과의 결혼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신들을 섬긴 일을 그려 보여 줍니다.
이 시는 하나님을 출애굽 때부터 어린 자녀 이스라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부모로 그립니다. 율법에 따르면 패역한 아들은 사형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 근처에 있다가 함께 멸망한 성읍들이었습니다. 히브리 사상에서 마음은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의지의 중심입니다. 여호와께서 사자처럼 부르짖으신다는 표현은 아모스서에도 나옵니다.
- 54일째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아모스 5책 소개. 유다 드고아의 목자로서 직업 선지자가 아니었던 아모스는 기원전 755년경 여로보암 2세 때 북쪽으로 가서 벧엘 성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번영하던 그 시대에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억압을 당했으며, 여호와 예배에는 지역 신들의 숭배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 장은 히브리어 장송가인 qinah로 시작하는데, 3+2 박자로 되어 있어 마치 이스라엘이 이미 죽은 것처럼 노래합니다.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족장들과 관련된 성소였고, 길갈에 관한 구절은 히브리어로 소리를 살린 말놀이입니다. 농민들은 진흙 벽돌로 집을 지었으므로, 다듬은 돌로 지은 집은 부자의 표시였습니다. 이웃 민족들은 묘성(플레이아데스)과 삼성(오리온)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메마른 지역의 계절 시내는 우기에만 물이 흘렀습니다.
- 55일째
니느웨가 귀를 기울이다
요나 3책 소개. 요나서는 앗수르의 큰 성 니느웨에 경고하라는 보냄을 받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앗수르의 세력이 잠시 약해졌던 여로보암 2세의 통치기인 기원전 755년경입니다. 앗수르는 훗날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바벨론은 기원전 612년에 니느웨를 멸망시켰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핵심 도시였습니다. 성을 다 돌아보는 데 사흘이 걸렸다는 말은 요나가 메시지를 퍼뜨리는 데 걸린 시간을 뜻하거나, 주변 마을까지 포함한 것일 수 있습니다.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는 것은 애도의 표시였으며, 앗수르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짐승까지 금식에 포함한 것은 완전한 비상사태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 56일째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
미가 6책 소개. 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때인 기원전 약 735년부터 686년까지 유다에서 예언했습니다. 이때 앗수르는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위협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두 곳의 부패와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을 꾸짖었고, 장차 있을 회복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이 장은 법정 소송의 형식을 띱니다. 다른 고대 근동 조약에서 신들이 증인으로 불렸듯이, 산과 언덕이 증인으로 불립니다. 요단 동쪽의 싯딤은 이스라엘이 길갈로 건너가기 전의 마지막 진영이었습니다. 핵심 히브리어 낱말은 mishpat(정의)와 khesed(신실한 사랑)입니다. 오므리와 아합은 북쪽 왕조(기원전 885–841년)를 세웠습니다.
- 57일째
성전을 다시 지으라
학개 1책 소개. 학개서에는 바사 왕 다리오 1세 2년, 곧 기원전 520년에 예루살렘에서 주어진 네 편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구약에서 가장 정확하게 연대가 밝혀진 예언에 속합니다. 첫 포로들이 돌아온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성전은 여전히 폐허였습니다. 학개는 백성에게 다시 지으라고 촉구했고,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은 바사가 임명한 유다 총독이었고,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가뭄과 흉년으로 유다의 경제는 약해져 있었습니다. 백성의 판벽한 집은 폐허가 된 성전과 대조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나무로는 건축에 필요한 재목을 댈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어로 ‘가뭄’(khoreb)은 ‘황폐’(khareb)와 소리가 비슷합니다.
- 58일째
연단하는 자의 불
말라기 3책 소개. 말라기는 성전이 재건된 뒤, 아마 기원전 400년대에 바사의 속주 유대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부주의했고, 예배는 건성이었으며,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저버리셨다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일련의 논쟁으로 짜여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내 사자”는 malaki로, 말라기의 이름과 같습니다. 불과 잿물의 그림은 금속을 정련하는 일과 빨래에서 왔습니다. 그 강한 잿물은 식물로 만든 알칼리성 세제였습니다. 술수하는 자들은 이득을 위해 마술을 부리거나 점을 쳤습니다. “기념책”은 이름과 사건을 기록하던 바사의 관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십일조는 추수와 가축의 10분의 1로,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위해, 그리고 3년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드렸습니다. 말라기 시대에는 이것을 성전의 창고로 가져왔습니다.
- 59일째
동방에서 온 박사들
마태복음 2책 소개. 마태복음은 예수의 생애, 가르침, 죽음, 부활을 들려주는 네 복음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레위라고도 불린 마태가 썼으며, 기원후 65년에서 80년 사이에 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 신앙이 유대교와 어떤 관계인지 고민하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박사들은 별을 관찰했으므로 아마 점성가였을 것이며, 많은 유대인이 살던 바벨론 지방에서 왔을지도 모릅니다. 헤롯 대왕은 로마의 충실한 동맹자로서 갈릴리, 유대, 사마리아를 다스렸으며(기원전 37–4년), 건축 사업과 가족을 살해한 일로 유명했습니다. 전승은 세 가지 예물에 따라 박사를 세 명으로 꼽지만, 본문은 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헤롯이 죽은 뒤 그의 왕국은 아들들에게 나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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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 설교의 시작
마태복음 5산상 설교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다섯 개의 긴 가르침 묶음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표현은 수동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말하는 유대식 화법입니다. “땅”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 땅’으로도 옮길 수 있습니다. 소금은 음식을 보존하고 맛을 내는 데, 그리고 언약을 맺는 데 쓰였습니다. 라가는 대략 ‘빈 머리’라는 뜻의 아람어 욕설입니다. ‘지옥’으로 옮긴 낱말 Gehenna는 예루살렘 밖의 한 골짜기에서 왔는데, 유다의 몇몇 왕이 그곳에서 사람을 불살라 제물로 바쳤습니다. 로마 군인을 위한 강제 노역은 점령 생활의 굴욕적인 일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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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의 비유들
마태복음 13이것은 마태복음의 세 번째 큰 가르침 묶음입니다. 예수께서는 비유(헬라어 parabole, 견주어 보임)로 가르치십니다. 비유는 일상의 한 장면을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진리 옆에 나란히 놓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비유는 대개 하나의 중심 요점을 축으로 하므로, 모든 세부 사항에 숨은 뜻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밀 가운데 있던 가라지는 아마 독보리였을 것입니다. 독보리는 익기 전까지 밀과 거의 똑같아 보이며, 남의 밭에 그것을 뿌리는 것은 처벌받는 범죄였습니다. 사람들은 도둑과 군대로부터 숨기려고 귀중품을 밭에 묻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 낱말은 나무나 금속이나 돌을 다루는 장인을 가리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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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시작
마가복음 1책 소개. 마가복음은 가장 이른 복음서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입니다. 초대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마가라 하는 요한이 베드로가 죽은 뒤 로마 교회의 요청으로 사도 베드로의 회상을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오던 기원후 60년대 후반에 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메시야(히브리어 mashiakh)와 그리스도(헬라어 christos)는 둘 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해 북쪽 요단 강 가까운 광야에서 활동하며, 선지자 엘리야처럼 옷을 입고 율법이 먹도록 허락한 메뚜기를 먹습니다. 헤롯 안디바가 다스린 갈릴리는 크기가 약 40×25마일(65×40km)이었습니다. ‘문둥병’이라는 말은 여러 피부병을 아울렀고,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것을 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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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앞에서, 그리고 골고다에서
마가복음 15로마의 재판은 보통 새벽에 시작되었습니다. 유대 공회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으므로, 예수를 기원후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의 로마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데려갔습니다. 빌라도는 보통 가이사랴에 살았지만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끝에 쇠붙이나 뼈를 단 가죽 끈으로 채찍질하는 일이 십자가 처형에 앞섰고, 채찍질만으로도 죽을 수 있었습니다. 사형수는 보통 십자가의 가로대를 지고 갔습니다. 시몬은 북아프리카의 구레네에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골고다는 아람어로 “해골의 곳”이라는 뜻이며(라틴어 calvaria, 여기서 ‘갈보리’가 나왔습니다), 성벽 밖에 있었습니다. 예수의 외침 Eloi(“엘리”)는 아람어이며, 그 소리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 64일째
베들레헴에서 나시다
누가복음 2책 소개. 사도행전으로 이어지는 누가복음은 예수의 생애를 자세하고 차례대로 기록하려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저자는 의사이며 때때로 바울과 동행한 누가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던 기원후 약 59–63년에 쓰였을 수도 있고,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원후 70–90년에 쓰였을 수도 있습니다. 헬라·로마 문체로 된 격식 있는 서문으로 시작합니다.
아구스도는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로마를 다스렸습니다. 호적 조사는 세금을 매기려고 사람들을 등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는 헤롯 대왕이 죽기 전인 기원전 6–4년경에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5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흔히 “사관”(여관)으로 옮기는 낱말은 손님방이나 나그네 숙소를 뜻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새 두 마리를 드린 가족의 제물은 율법이 가난한 가정에게 출산 뒤에 드리도록 정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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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다가 다시 찾음
누가복음 15세리들은 부패로 이름난 로마의 대리인으로 멸시를 받았습니다. 양 백 마리는 넉넉지 않은 목자가 가진 보통 규모의 양 떼였습니다. 은전 열 개는 여인의 지참금 일부였을 수 있으며, 집은 흙이나 돌로 된 바닥에 어두컴컴했습니다. 아들이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은 깊은 모욕이었고, 먼 나라 이방인들 가운데서 집안 재산을 잃는 것은 수치였습니다. 유대 율법에서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었습니다. 체통 있는 가장은 달리지 않았습니다.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와 살진 송아지는 그 아들이 집안의 존귀한 일원임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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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길
누가복음 24무덤 입구는 아마 홈을 따라 굴리는 크고 둥근 돌로 막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금요일을 첫째 날로 치는 당시의 일반적인 계산법으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습니다. 글로바와 그의 동행, 어쩌면 그의 아내는 다른 곳에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마 유월절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을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본보기로 삼으려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십자가 처형을 했으므로, 순례자가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중동의 환대는 낯선 사람에게 음식과 하룻밤 잠자리를 내주기를 요구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히브리어 성경의 세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 뒤에도 제자들은 유대인으로서 성전에서 계속 예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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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요한의 증언
요한복음 1책 소개.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독자들이 예수를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려고 쓰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 복음서는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곧 세베대의 아들 요한으로 여겨지는 이에게서 나왔으며, 그는 말년인 기원후 90년경 아마 에베소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때 그곳의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지역 회당들과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헬라어 낱말 logos(말씀)에는 풍부한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헬라 사상가들에게는 우주에 질서를 주는 이성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와 창조의 능력이었습니다.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동사는 문자적으로 ‘장막을 쳤다’는 뜻으로, 성막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기잡이의 집’이라는 뜻의 벳새다는 갈릴리 바다 북쪽 기슭에 있었습니다. 빌립은 헬라식 이름이고 나다나엘은 히브리식 이름인데, 이는 갈릴리의 섞인 문화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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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에서
요한복음 4유대와 갈릴리 사이를 오가는 유대인들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길고 쓰라린 적대감 때문에 흔히 사마리아를 피해 여리고와 요단 골짜기를 거쳐 다녔습니다. 수가는 야곱이 땅을 가졌던 세겜 근처에 있었고, 그의 우물은 깊이가 100피트(30m)가 넘었습니다. 여인들은 대개 서늘한 아침이나 저녁에 물을 길었고, 사회 관습상 유대인 선생은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생수”는 신선하게 흐르는 물을 뜻했는데, 세겜에는 강이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세겜 위로 솟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했습니다. 이 장은 가나에서 끝나는데,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멀리서 한 관리의 아들을 고치시며, 이것이 갈릴리에서 행하신 두 번째 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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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니의 나사로
요한복음 11나사로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이름 엘르아살을 줄인 형태로, 당시 매우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바로 동쪽, 감람산 너머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그날 장사했고, 친척과 이웃이 모여 큰 소리로 울며 7일 동안 애도했습니다. 무덤은 바위 언덕을 깎아 만들었는데, 안에는 돌 선반이 있고 입구에는 굴리는 돌이 있었습니다. 공회는 메시야 운동이 일어나면 로마의 무력이 성전과 민족에게 들이닥칠까 두려워했습니다. 가야바는 기원후 18년부터 36년까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2마일 떨어진 마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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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
요한복음 20막달라 마리아는 장례를 마무리하러 왔습니다. 유대의 많은 무덤은 굴리는 돌로 닫혀 있었고 무덤 도굴도 드물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처음에 누군가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합니다. 세마포 띠가 몸을 감쌌고, 따로 된 수건이 머리에 둘려 있었는데, 둘 다 무덤 안 선반에 놓인 채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제자는 전통적으로 요한으로 여겨집니다. 예수께서는 평안을 비는 유대인의 일상적인 인사(shalom)로 제자들에게 인사하십니다. 도마와의 만남은 그다음 주일에 있는데, 고대의 계산법은 첫날을 포함했으므로 여드레가 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장의 끝을 복음서의 원래 결말로, 다음 장을 부록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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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오순절
사도행전 2책 소개.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을 이어, 예수에 관한 메시지가 베드로와 그다음 바울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서 로마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승에 따르면 의사이자 바울의 동역자인 누가가 썼습니다. 이야기는 기원후 60년대 초에 끝나며, 책은 그때 쓰였거나, 많은 이들의 생각처럼 더 나중인 80년대 중반까지 쓰였습니다.
추수 절기인 오순절은 해마다 있는 세 순례 절기 가운데 하나였기에, 여러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가득 메웠습니다. 민족들의 목록은 오늘날 이란에 있는 바대와 엘람에서 시작하여 메소보다미아와 소아시아(지금의 튀르키예)의 로마 속주들을 거쳐 애굽,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에 이릅니다. 베드로의 연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약 30편의 연설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헬라어 낱말 koinonia는 긴밀하게 함께 나누는 삶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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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으로 가는 길의 사울
사도행전 9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이 이야기를 세 번 들려주며, 바울도 자기 편지들에서 이 일을 언급합니다. 회당(헬라어 synagoge, 모이는 곳)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기도하고 가르치던 지역 유대인의 모임 장소로, 포로기 이후에 생긴 관습입니다. 수리아의 수도 다메섹은 이스라엘 땅 밖에서 가장 가까운 큰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4–6일 길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그 도를 좇는 사람”이라 불렸습니다.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에서 내려와 도망친 일은 고린도후서에도 나옵니다. 그의 고향 다소는 길리기아의 수도였습니다. 유대인의 눈에 가죽을 무두질하는 일은 부정한 직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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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와 아덴의 바울
사도행전 17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는 마게도냐를 가로지르는 로마의 길인 에그나티아 가도에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반대자들은 신자들이 가이사를 거역한다고 고발했고, 바울을 맞아들인 야손은 보석금을 내야 했습니다. 베뢰아는 약 50마일(80km) 더 서쪽에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년)를 따르는 에비구레오 학파는 신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평온한 삶을 추구했고, 제논(기원전 335–263년)이 세운 스도이고 학파는 우주가 신적인 이성에 따라 다스려진다고 보았습니다.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제단에서 말을 시작하고, 길리기아 출신 스도이고 학자 아라토스를 비롯한 헬라 시인들을 인용합니다. 헬라 사람들의 귀에 부활은 어리석게 들렸습니다. 디오누시오는 그 도시의 최고 회의인 아레오바고의 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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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과 파선
사도행전 27이것은 바다 여행에 관한 가장 자세한 고대 기록 가운데 하나로, 일인칭 복수(‘우리’)로 서술되어 있으며 전승에 따르면 일행 가운데 하나였던 누가가 썼습니다.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의 감시를 받으며 항해하고, 무라에서 이달리야로 가는 애굽의 곡물선에 오릅니다. 늦가을은 항해하기에 위험한 계절이었습니다. 그레데 남쪽 해안의 미항은 겨울을 나기에 좋지 않은 항구였으므로, 선원들은 뵈닉스로 향했습니다. 거센 북동풍이 그들을 작은 섬 가우다 너머로 몰아갔고, 그들은 선체가 흩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배를 둘러 감았습니다. 배에 탄 276명이라는 숫자는 곡물선에 관해 알려진 사실과 들어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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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보낸 편지
로마서 1책 소개. 로마서는 바울이 세우지도, 아직 가 보지도 않은 교회인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는 아마 기원후 57년경 3차 선교 여행이 끝나 갈 무렵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으며, 그때 예루살렘에 연보를 가져간 뒤 서바나로 가는 길에 로마를 방문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기원후 49년 글라우디오 황제는 유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고, 이방인 신자들이 교회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돌아오자 긴장이 생겼습니다. 서두는 고대 편지의 일반적인 형식인 보내는 이, 받는 이, 감사, 주제를 따릅니다. 헬라 사람들은 외국인을 야만인이라 불렀는데, 그들의 말을 ‘바르 바르’로 흉내 내며 조롱한 것입니다. 죄악의 목록은 흔한 헬라 문학 형식인 악덕 목록을 따릅니다.
- 76일째
많은 지체, 한 몸
로마서 12여기서 편지는 가르침에서 실천적인 지침으로 넘어가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로마 교회의 긴장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흔히 역사를 이 시대와 오는 시대의 두 시대로 나누었는데, 바울이 쓴 “이 세대”라는 말(흔히 ‘이 세상’으로 옮김)은 문자적으로 ‘이 시대’를 뜻합니다. 공동체를 여러 지체가 있는 한 몸으로 그리는 그림은 고대 세계에서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와 스도이고 학파 교사 에픽테토스도 이 그림을 썼습니다. 헬라어 낱말 analogia(비율)는 수학과 논리학에서 온 말입니다. 몇몇 지침은 예수의 말씀, 특히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말씀을 가깝게 되울립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라는 권면은 문자적으로 ‘같은 것을 생각하라’입니다.
- 77일째
사랑의 길
고린도전서 13책 소개.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 세운 교회가 알려 온 질문과 문제에 답한 편지입니다. 그는 기원후 약 50–52년에 그곳에 처음으로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서 기원후 약 53–56년에 이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는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에 자리 잡은, 분주하고 국제적인 로마 식민 도시였습니다.
이 장은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논의를 잠시 끊는데, 그 논의는 다음 장에서 이어집니다. 방언은 고린도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긴 은사였습니다. 몸을 내어 주는 일에 대해서는 사본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본은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하고, 다른 사본은 자랑하려고 내어 준다고 하는데, 헬라어로 두 읽기는 한 글자 차이입니다. 거울은 보통 닦은 청동이어서 흐릿한 상만 보여 주었습니다.
- 78일째
부활에 관한 질문
고린도전서 15고린도에는 장차 있을 부활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헬라·로마 세계에서는 많은 이들이 영혼 불멸을 믿었지만, 몸의 부활은 낯설게 여겨진 유대인의 사상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내용을 요약해 전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본 이들을 열거합니다. 거기에는 다른 어떤 자료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 500여 명이 한꺼번에 본 일과, 주의 형제로 알려지고 훗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된 야고보가 포함됩니다. 승리한 왕들은 패배한 적을 발로 밟은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사형수들이 맹수와 맞서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인기 있는 오락이었고, 바울은 헬라 시인 메난드로스의 나쁜 동무에 관한 격언을 인용합니다.
- 79일째
다른 복음은 없다
갈라디아서 1책 소개. 갈라디아서는 소아시아(지금의 튀르키예)의 로마 속주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 아마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다른 교사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받고 유대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한 뒤, 예루살렘 공회 직전인 기원후 48년이나 49년에 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대 편지는 인사로 시작하고 흔히 감사를 덧붙였지만, 바울은 감사를 건너뛰고 곧바로 책망으로 들어갑니다. 그의 인사는 일반적인 인사말 chairein(문안합니다)과 소리가 비슷한 헬라어 charis(은혜)를 히브리어 shalom(평강)과 결합합니다. “저주를 받을지어다”로 옮긴 anathema는 멸망에 바쳐진 것을 뜻하는 히브리어 kherem을 옮긴 말입니다. 바울이 아라비아에 머문 일은 이 편지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보낸 15일의 방문은 아마 사도행전 9장의 방문일 것입니다.
- 80일째
가정과 전신 갑주
에베소서 6책 소개. 에베소서는 바울이 아마 로마나 에베소의 감옥에서 쓴 편지로, 어쩌면 로마의 아시아 속주에 있는 여러 신생 교회를 위한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 속주의 수도 에베소는 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기원후 60–62년으로 연대를 잡지만, 더 이른 기원후 53–56년경일 수도 있습니다. 이 편지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의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에게 차례로 주는 가정 지침은 헬라 도덕 문헌에서 익숙한 형식이었습니다. 노예 제도는 로마 세계의 일상적인 현실이었고, 바울은 양쪽 모두에게 말합니다. 전신 갑주의 그림은 대부분 방어용인 로마 군인의 장비에서 왔습니다. 화살은 때때로 역청에 담갔다가 불을 붙여 쏘았습니다. ‘형제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낱말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 81일째
겸손과 두 사람의 사자
빌립보서 2책 소개.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따뜻한 편지입니다. 빌립보는 에그나티아 가도에 자리 잡은 마게도냐의 로마 식민 도시로, 바울이 기원후 50년경에 그 교회를 세웠습니다. 편지는 에바브로디도가 가져온 선물에 감사합니다. 전통적으로 기원후 60–62년으로 연대를 잡지만, 더 이른 기원후 53–56년경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중심 단락을 초기 그리스도인의 찬송으로 봅니다.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그가 “자기를 비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 처형은 범죄자에게 내리는 로마의 잔인하고 굴욕적인 형벌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제단에 포도주를 부어 제물로 드렸는데, 바울은 재판 결과를 기다리며 자기에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이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병으로 거의 죽을 뻔했으며, 아마 이 편지를 가지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 82일째
널리 알려진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1책 소개.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의 신생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로마의 호의를 받던 마게도냐의 주요 도시로,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았고 자체 화폐를 주조했으며 성안에 로마 수비대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좋은 소식을 가져온 뒤 기원후 50년경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고대 편지는 이 편지처럼 보내는 이의 이름, 받는 이, 인사로 시작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이 교회를 세웠지만, 짧게 머문 뒤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심자는 우상을 버린 이방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신이 있던 세상에서 조상의 신들을 버리는 일은 흔치 않았고 고난을 불러왔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헬라 북부와 남부의 로마 속주였습니다.
- 83일째
바울의 마지막 말
디모데후서 4책 소개.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자기 동역자이자 대리인인 디모데에게 보낸 작별 편지로, 디모데는 그때 아마 에베소에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아마 두 번째로 로마에 갇혔을 때, 곧 자기 죽음이 가까웠음을 예상하던 기원후 64년경, 죽기 얼마 전에 감옥에서 이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바울은 다가오는 자기 죽음을 부어 드리는 관제로 그립니다. 디도는 아드리아 해 동쪽 해안의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바울은 드로아 항구에 두고 온 겉옷과 책과 가죽 종이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고린도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도시의 재무관 에라스도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아마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바닷길이 끊겼으므로 디모데는 겨울 전에 와야 했습니다.
- 84일째
오네시모를 위한 편지
빌레몬서 1책 소개. 빌레몬서는 바울의 가장 짧고 가장 개인적인 편지로, 감옥에서 빌레몬에게 보낸 것입니다. 빌레몬은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20마일(193km) 떨어진 로마의 아시아 속주 작은 마을 골로새의 그리스도인 지도자였습니다. 편지는 그에게서 도망친 종으로 보이는 오네시모에 관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기원후 60–62년에 로마에서 쓴 것으로 보지만, 더 이른 기원후 53–56년에 에베소에서 썼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법은 붙잡힌 도망 노예를 돌려보내도록 했고, 주인은 그를 채찍질하거나 낙인을 찍거나 심지어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압비아는 아마 그의 아내, 아킵보는 아마 그의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유익한’이라는 뜻이며, 바울은 이 이름으로 말놀이를 합니다. 바울은 보통 편지를 받아쓰게 했지만, 이 보증의 말은 자기 손으로 썼습니다. 이 편지와 골로새서는 아마 함께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 85일째
믿음의 사람들
히브리서 11책 소개. 히브리서는 편지 형식으로 된 설교이며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원후 60년대 초에 쓰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기원후 70년 이후일 수도 있으며, 아마 박해를 마주한 로마의 가정 교회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헬라·로마 사회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똑같이 불신했고, 그들이 신들을 거부한다고 해서 무신론자라 불렀습니다.
이 장은 아벨부터 선지자들까지 이스라엘 역사의 인물들을 길게 나열하는데, 저마다 “믿음으로”라는 같은 말로 소개된 뒤 행동과 그 결과가 이어집니다. 야곱의 지팡이에 관한 세부 내용은 구약의 헬라어 번역에서 왔습니다. 애굽의 신왕국(기원전 약 1550–1069년)은 큰 부의 시대였습니다. 고문에 관한 구절은 기원전 170년대와 160년대의 유대인 순교자들을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 86일째
시험과 지혜
야고보서 1책 소개. 야고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실천적인 가르침으로, 신약의 어떤 책보다 행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전승에 따르면 주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가 썼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편지를 기원후 46년경, 박해가 시작된 뒤 여러 곳에 흩어진 유대인 신자들에게 아마 예루살렘에서 보낸 것으로 봅니다.
야고보(헬라어 Iakobos)는 족장 야곱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흩어진 자들(헬라어 diaspora)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기 이후 그 땅 밖에 살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인사말 chairein은 헬라 편지의 표준 인사였고, 야고보는 이를 기쁨(chara)과 연결합니다. “두 마음을 품어”에 해당하는 그의 낱말은 그가 직접 만든 말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글을 읽지 못했기에 성경을 낭독으로 들었습니다. 고아와 과부는 그들을 부양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 87일째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베드로전서 1책 소개. 베드로전서는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 북부, 지금의 튀르키예에 있는 로마의 다섯 속주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베드로의 생애 말기인 기원후 60년대 초로 연대를 잡습니다. 많은 이웃이 그리스도인들을 이상하고 비밀스럽고 로마 사회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았기에, 이 편지의 독자들은 적대감에 맞닥뜨렸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는 로마의 속주였으며,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 다닐 순서대로 나열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독자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른 것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그림을 사용한 것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곧 마음을 행동할 채비로 갖추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허리를 동이는 것, 즉 일하거나 달리려고 긴 옷을 허리띠에 걷어 넣는 것을 뜻합니다. 몸값은 포로나 종을 풀어 주려고 치르는 값이었습니다.
- 88일째
사랑과 참된 가르침
요한일서 4책 소개. 요한일서는 전승에 따르면 아마 사도 요한이 기원후 85–90년경 로마의 아시아 속주(지금의 튀르키예 서부)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최근에 한 무리가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 이 편지가 거부하는 예수에 관한 가르침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떠나간 교사들은 선지자로서 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가르쳤는데, 이 견해는 훗날 ‘보이다’라는 뜻의 헬라어 낱말에서 이름을 따 가현설이라 불렸습니다. 같은 시대의 또 다른 교사 케린투스는 신적인 그리스도가 세례 때 사람 예수에게 내려왔다가 그가 죽기 전에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온전한”으로 옮긴 헬라어 낱말은 흠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성숙하거나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 89일째
밧모 섬에서 본 요한의 환상
요한계시록 1책 소개. 요한계시록은 전승에 따르면 사도인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쓴 환상의 책입니다. 기원후 90년대에 쓰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고 60년대일 수도 있으며, 황제를 공경하기를 거부하면 혹독한 박해를 받을 수 있던 로마의 아시아 속주(지금의 튀르키예 서부)의 일곱 교회에게 보낸 것입니다.
헬라어 apokalupsis는 ‘드러냄’을 뜻하며, 상징과 숫자와 언어의 그림으로 말하는 글의 한 종류를 가리킵니다. 이 책은 세 가지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서언, 헬라 편지 형식의 인사, 그리고 역사적 배경입니다. 밧모에는 죄수와 유배자를 가두는 로마의 요새가 있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입니다. 일곱 금촛대는 메노라(일곱 가지 등잔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 90일째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계시록의 마지막 환상은 오래된 이미지들을 끌어옵니다. 이사야서의 새 하늘과 새 땅, 에스겔서의 측량된 성, 그리고 대제사장의 흉패에 박힌 것과 같은 열두 보석입니다. 고대의 이미지에서 바다는 혼돈을 상징했고, 때로는 괴물로 그려졌습니다. 신부인 성은 앞에서 음녀로 그려진 바벨론과 대조되는데, 바벨론은 흔히 로마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성은 정육면체로, 각 변이 12,000스다디온(약 1,400마일)이고 성곽은 144규빗(약 216피트)입니다. 이 12의 배수들은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고대 도시의 성문은 적을 막으려고 밤에 닫혔지만, 이 성문들은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앱에서는 계획이 읽던 곳을 기억하고, 읽은 날을 표시하고, 날마다 알려 줍니다. 개역한글 (1961).
Tyndale Open Study Notes를 고치고 줄임 · CC BY-SA 4.0 — Tyndale Open Study Notes, © 2022 Tyndale House Publishers, CC BY-SA 4.0.
Tyndale Open Study Notes를 고쳐 씀: 해설을 골라 줄이고(역사와 배경만), 영어 외의 언어로는 기계 번역했습니다. Tyndale House Publishers의 원저작물은 tyndaleopenresources.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